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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조선총독부 관저 복원? 청와대의 역사로 본 '조선총독부 관저'의 의미

by 자로소 2022.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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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가 일제 잔재 청산 목적으로 철거된 조선총독(청와대 옛 본관) 모형 복원을 추진한다.>
 
7월 21일 박보균 문화체육부장관은 ‘청와대 활용 종합 프로젝트’를 포함한 하는 새 정부 업무계획을 보고했다.
청와대 활용 프로젝트는 프랑스 베르사유 궁을 모델로 청와대를 문화, 예술,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랜드마크 공간으로 가꾸겠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문제는 이 가운데 1993년 철거된 청와대 옛 본관 터에 모형 복원을 추진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다. 문체부는 “본관과 관저, 본관 터는 역대 대통령의 삶은 물론 중요한 결정을 내렸던 권력의 순간을 실감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 공간으로도 꾸밀 생각”이라며 복원 이유를 설명했다.》
 

◈ 청와대의 역사

→청와대 자리는 고려시대 명당으로 주목받다, 1394년 태조가 조선을 새우고, 새 궁궐을 지었는데, 경복궁 북쪽에 해당하는 청와대 자리는 고려의 궁궐 '남경'과 위치상 일친 하는 것으로 보이며, 충순당, 취로 정 등의 전각이 있던 자리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 불탄 후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하고, 현재의 청와대 자리에 후원을 만들면서 융문당(隆文堂)·융무당(隆武堂) 등의 건물을 지었는데 이때 경무대(景武臺)도 만들었다. 경무대는 임금의 휴식공간인 오운각을 비롯 32개 동의 건물이 있었다. 
이 자리는 조선시대 경복궁 후원이었고, 왕궁을 지키는 수궁(守宮)의 자리도 있었는데, 지금 청와대 터가 수궁터이다.
→ 일제강점기인 1927년 경무대를 비롯한 많은 건물이 헐렸다. 
1939년 경복궁에 있던 총독관저를 후원 자리인 현재의 자리에 일본이 준공된 "조선총독관저"가 들어섰고
→ 이후 "미군 사령관 관저"로 쓰였고,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경무대(한국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로 '청와대'의 옛 이름)"로 명명하여 사용했고, 
→대한민국 4대 대통령인 윤보선 대통령이 미국의 백안관을 본떠 '청와대'로 개칭하고, 
→역대 대통령들이 사용하다..(박정희 때는 1층은 대통령 집무실, 2층은 대통령 가족생활공간, 개보수)
 (1991년 노태우 때 22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의견을 모아  9월 지금의 본관과 관저, 춘추관을 신축)

&lt;전 청와대 외부와 내부 모습&gt;

→1993년 김영삼 정권에서 '일제 잔재 청산 차원'에서 철거. 

&lt;1993년 철거당시의 모습&gt;

→ 이후 경무대 위치에 '새 청와대'가 건립(91년에 청와대 본관 새로 건축, 93년에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그 건물을 철거하고 수궁터에 복원)되었고, 중앙청 위치에는 경복궁이 재건되었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참모와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본관 구조를 바꾸는 공사를 하고자 했지만 실패했으나, 박정희가 1975년 만들었던 전시 대피 시설을 2003년 수리하여 국가위기관리센터 상황실(지하벙커)을 만들었다.)

&lt;1991년 준공된 청와대 본관 전경&gt;

고려시대 때부터 사용된 15만 개의 청자기 와로 만들었으며, 귀한 청자기와는 서울 5대 궁궐 중에 창덕궁의 신성전에만 사용한 기와이다.
청와대는 1948년부터 2022년 5월 9일까지 대한민국 대통령이 기거하는 대통령 관저이자 헌법기관으로서의 대통열부와 관계된 행정기관이다. 
관저로서의 청와대는 집무 공간인 본관, 공식 행사 공간인 영빈관, 주거공간인 관저, 외빈 접견장소인 상춘재, 비서 부속기구인 대통령비서실, 경호 부속기구인 대통령 경호처, 대언론 창구인 춘추관 등을 포함한다. 

&lt;청와대 전체 배치 지도&gt;

 
 
참고로, 박보균 장관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인데, 우리나라 국민들을 폄훼하고 일본인을 숭상하는 기사들을 많이 써 온 지극히 문화사대주의자인 그가 문화를 관장하는 수장이라는 것은 치욕적인 문화정책을 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더구나, 중국의 동북공정에 기여하는 친일사학자들이 아직도 한국의 역사계를 주무르고 있는 게 현실이고, 그 얘기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강역의 물리적 폭 뿐 아니라, 문화적 강역까지 지극히 적게 한정하고, 일본 또는 중국의 영향하의 민족으로 만들고자함에 촛점이 맞춰진 사학의 한국현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 조금더 깊이있게 다뤄보기로 하겠다.)
 
그런 현실에서 현대사의 우리민족의 자랑거리인 청와대를 훼손하려는 움직임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세금으로 조선총독부 관저를 부활? 이것은 정말 황당하고, 자존심상하는 문화정책이라고 진단할 수 밖에 없다. 
청와대 옛터가 고려시대 이래로 남경의 궁궐터였다는 점에서 복원하고자 한다면,  우리 민족의 궁궐을 살려야지 일제강점기의 "조선총독부 관저를 재건"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림, 내용 등 일부 출처 : 나무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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