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38선을 그렸다고?
2차 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에 의해 세계 질서 재편, 한국의 독립이 강대국에 의해 결정
1. 1945년 2월 얄타회담
한반도를 미국, 소련, 영국, 중국 4개국에 의한 신탁통치 합의(한민족의 독립과 무관한 결정)
2. 1945년 8월 포츠담선언
일본이 무조건 항복한다고 선언 => 일반명령 제1호 작성(38도선 확정)
한반도 분담 배경 (기존 상식)
1. 스탈린, 일본 분할점령을 트루먼에게 요청
2. 트루먼, 스탈린 요청을 거절(미국은 태평양지역 안보 거점으로 '일본'을 독점하고 싶어 함)
3. 소련군은 미국 비위 안 건들기 위해 한반도 38도선에서 남진 중단
4. 일본은 전쟁도발국임에도 불구하고 공동점령 응징 면하게 됨.
5. 한반도 분할 점령은 소련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 아님.
6. 미국, '소련의 한반도 전체 점령 막으려면 최소 서울을 확보할 수 있는 38선에서 한반도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라고 해명
일반명령 제1호
파란색이 무엇일까?
바로 일본이 표시한 일본의 땅이다.(남한까지 포함된 땅)
전략정책과장인 본스필대령이 일본과 함께 간단하게 작성한 것(한반도 분단의 운명 결정됨)
이 문서를 미국은 소련에게 제안하고, 소련은 45년 8월 16일 이 제안을 수용 => 북위 38도선 확정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대동아공영의 마지막선을 한반도 38도선을 그은 것을 그대로 확정한 것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꿈
비록 2차 대전으로 패했지만, 현재에도 대동아공영을 꿈꾸며, 38선에 다시 들어가서 서는 것(자위대의 위치)
1943년 초 패색이 짙어지자, 현역 해군소장이자 종전시 해군성 교육국장이었던 '다카키 소키치'는 패전 이후 미국의 막강파워를 견제하기 위해 소련과 손잡는 것을 모색하였고, 1945년 3월 13일 '다카키'는 육필로 완성한 것이 <주칸호쿠구안=中間報告案)이다. 이는 일본이 전쟁에 패하더라도, 동북아에서 일본이 누렸던 기득권을 모두 미국에 넘기는 것이 아닌, 소련과 손잡아야 한다는 것이고, 언제 가는 되찾을 것이고, 그 마지막 선이 '38선'이라고 했다. 즉,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일본이 항복하기 전에 이미 한반도 분할을 논의 검토하고 있었던 것이었고, 실제 일본군은 소련이 참전할 때까지 만주에 있던 일본 관동군 100만이 제지하지 않으며, 항복을 늧췄던 것이다. (소련이 선전포고후 8월 9일 함경북도로 들어와 8월 12일 청진-나진-웅기-경흥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일본 관동군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렇게 주칸호쿠구안으로 검토되고 논의됐던 38선이 포츠담선언의 일반명령1호로 작동하여 30분만에 결정된 것이다.
다카키는 '지도적 전략가'로 활약한 인물로, 1930년 일본의 세계전략으로 주축국(독일, 이탈리아, 일본)과 소련을 묶어 영미동맹에 대항하는 방안을 입안했던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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